어느 햇살 좋은 날

요즘 이 도시에 유난히 동양인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국에 있을 땐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의 얼굴을 보면 곧잘 구분해 내곤 했는데, ..
여기와서는 점점 어려워진다. 특히 중국인들..
서양의 그들과 구분해내고 나면.. 우린 참 많이 닮아 있기 때문일까...
얼굴이 까만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같은 아프리카에서 왔으려니... 하겠지만
잘 들여다보고 그들과 교류하다보면 나라마다 민족마다 저마다 다른 얼굴, 키, 분위기 등등 모두가 달라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
중국 역시 참 넓고 많은 민족들이 있기에 그들 사이에서도 많은 다름을 보여준다는 것...

햇살 좋은 오늘.. 아직은 2월임에도 봄처럼 따뜻한 그런 날..
이 도시에 어느 길을 걸어가다 어떤 마음 좋게 생긴 동양인의 얼굴을 가진 나이드신 어떤 여자 분..
그분은 '할로' , '히네지쉬?(중국인?)'라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코리아니쉬(한국인)라고 대답을 하니 굉장히 미안해 하셨다.
동양인의 얼굴이 비슷해서 같은 중국인인줄 알았단다.
당신은 중국인인데 내가 중국인일거라 생각해 반가우셨나보다.
그런 그분의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기에..
아니 그리 급한 발걸음이 아니었기에 대화를 이어가기로 마음먹었고
우린 얼굴이 비슷하니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했고
그분은 자신이 70세이고 혼자 사는데 아들은 프랑크푸르트에 살고 있다며
지금은 슈퍼에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중국어와 베트남어를 할 수 있고
20년 이상 이 땅에사 살고 있긴 하지만 좀처럼 독일어를 잘 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편은 죽었고 그래서 혼자라고...
곧 아들 곁으로 이사를 간다고 서툰 독일어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여기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어 외롭다고 하는 것 같았고,
외국인이라 남편이 제대로 응급처치도 못받고 죽었다며...
어느 크리스마스날 남편이 위독해서 전화를 했더니 안오더란다.
급한 마음에 옆집 독일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옆집 사람이 응급실에 전화를 해주었고 그제서야 출동한 구급 대원들은 남편의 심장을 서너번 눌러준게 전부라며 결국 죽었다. 그래서 당신은 이 땅에서 외국인으로 살고 있기에 구급차도 와주지 않아서
남편도 잃을 수 밖에 없었고 일을 하던 남편이 이제는 없기에 자신은 적은 돈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고 집에 혼자라서 할 일이 없고 그래서 바람도 쏘일 겸 슈퍼에 간다는 길고 긴 슬픈 이야기를...
길 한복판에서 처음 만난 내게 전부 쏟아 놓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그 눈빛...
그녀는 하염없이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들어 주는 것 뿐...

사실...
외국인이어서 구급차가 와주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어는 거의 못하고 독일어 발음 역시 굉장히 부정확하고 어려워서 우리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같은 말을 반복해주어야 겨우 알아 듣는 부분도 많았기에...
짐작컨데 콜센터에서도 도움을 주고 싶어도 끊을 수 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역시도 외국인으로 살아가는 서러움일테지.
외롭다고 이제와서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없는 사정도 있을테고..
다들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고 슬픔이 있는데
그걸 공유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그런 세상에서
나는 한 나이드신, 나와 같은 외국인의 외롭고 쓸쓸한, 그리고 슬픈 그 마음을 언어는 비록 통하지 않아도 공유해보려 애써본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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